삼성그룹 퇴임 임원들, 외국어 입문 2년 만에 문학 작품 번역 출간해 화제

번역 출간된 율리안 모데스트 원작 소설 ‘닫힌 조개(La Fermita Konko)'(256쪽), 에스페란토 문화원 펴냄

 

평균 나이 77세, 새 언어 입문 2년 만에 번역서 출간

퇴임한 삼성그룹 임원들의 모임인 ‘삼성 성우회(회장 이순동)’ 내 소모임 ‘에스페란토회(회장 전창성)’ 회원 중 7명의 평균 나이는 77세다. 이들이 번역서를 공동 출간해 주변을 놀라게 하고 있다.

원작은 불가리아 작가 율리안 모데스트(Julian Modest)의 소설 ‘La Fermita Konko(닫힌 조개)’.

회원 7명 중 단 한 명도 불가리아어를 배운 적이 없다. 그렇다고 영어로 쓰여진 작품이 아니다. 뜻밖에도 원작은 국제 공용어인 에스페란토로 쓰여졌다. 이들은 어떻게 에스페란토 번역서를 출간할 수 있었을까.

 

자국민 끼리는 모국어를, 외국인과는 국제 공용어를

전창성(78)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평생을 몸 담아 왔던 삼성에서 퇴임한 후, “자국민 끼리는 모국어를, 외국인과는 중립적인 국제 공용어를 사용하자”는 1민족 2언어주의를 표방하는 국제어 에스페란토의 ‘언어를 통한 평화 운동’에 매력을 느껴 낯선 이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에 앞서 2014년 12월, 전창성 회장이 소속된 국제 봉사 단체 로타리클럽에서 “명사 초청 강연회”에 에스페란토 문화원 이중기 원장을 강사로 초청했다. 전 회장은 에스페란토 소개 강연을 듣고 신선한 지적 충격을 받았다.

 

국제 로타리 최초의 동호회는 1928년에 결성된 에스페란토 동호회

에스페란토의 매력에 더해, 1905년에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로타리클럽 내 수많은 국제 동호회 중 최초로 결성된 동호회가 에스페란토 동호회라는 것. 1928년 프랑스와 영국의 로타리 회원들이 함께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통의 언어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모임이 결성되었고, 1929년 파리에서 첫 연례회의를 가지면서 5개국 26명의 회원으로 국제 로타리 내 에스페란토 동호회는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강연을 들으면서 에스페란토의 가치를 간파하고 그 매력에 흠뻑 빠진 전 회장은 에스페란토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곧 이 원장의 제자가 되어 1개월 간 4회 총 12시간 짜리 초급 과정을 수료했다. 수료 당시 전 회장의 나이는 72세.

그는 초급 과정을 공부하면서 250쪽에 달하는 교재 ‘인터넷 시대의 국제어 에스페란토 입문(이중기 저)’을 직접 컴퓨터에 입력하고 편집했다. 이렇게 만든 PDF판(전자파일 형식의 하나) 교재를 에스페란토 스승인 이 원장 앞에 내놓았다. 이 원장과 동료 수강생들이 전 회장의 열정에 놀란 것은 당연한 일.

 

2014년 12월에 열린 명사 초청 강연에서 에스페란토 문화원 이중기 원장(앞줄 오른쪽 2번째)의 강연을 듣고 훗날 ‘에스페란토회’를 결성한 전창성 회장은 에스페란토 학습을 다짐했다.

 

12시간 수업으로 에스페란토 읽고 쓰고 말하기 가능해

초급 강좌 12시간을 배우고 나서 읽고 쓰고 말하기가 조금씩 가능해지면서 에스페란토의 가치와 활용성에 확신을 가진 전 회장은, 스스로 에스페란토 전도사를 자처하며 삼성 성우회 회원들에게 에스페란토를 알리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그 수가 늘어 전 회장 외에도 14명의 회원이 초급 강좌를 마치게 되면서 삼성 성우회 내에 ‘에스페란토회’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초급 과정 수료 이후에도 이 원장을 모시고 매주 1회 중급 과정을 꾸준히 배우며 실력을 키워 왔다.

가장 최근에 수료한 4명의 회원은 문화원 초급 강좌 321기로 2018년 12월에 수료했다. 번역서 출간일 기준으로 만 2년 남짓한 기간에 생소한 언어를 읽고, 듣고, 쓰는 배움의 과정을 모두 거치고 문학 작품을 번역해 책까지 낸 것이다. 이는 언어 학자나 전문 번역가들도 놀랄 일이다.

 

에스페란토 초급 강습 321기 과정을 마치고 기뻐하는 에스페란토회 회원들과 에스페란토 문화원 이중기 원장(맨 오른쪽). 수료생들에게 에스페란토를 추천한 전창성 회장(맨 왼쪽)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에스페란토 문화원

 

국제어 에스페란토 1 글자 1 발음 원칙, 문법 16가지 외 예외 없어

이들을 지도한 이중기 원장은 “에스페란토는 1 글자 1 발음 원칙이며 문법은 16가지 규칙 외에 예외가 없어 배우기 쉽습니다. 또한 문학적인 표현에 적합한 언어적 장점에 더해, 번역에 참여한 분들이 한 주도 쉬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공부해 오면서 반드시 번역해 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고 분석했다.

율리안 모데스트는 국제어 에스페란토 원작 소설가로 전 세계 에스페란토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이며, 그의 20여 작품 중 국내에는 8번 째 소개되는 번역서이다.

‘La Fermita Konko(닫힌 조개)’는 구 소련 체제의 붕괴에 따른 동구권의 정치적 변혁기 시대 상황이 반영된 18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번 번역서에는 에스페란토를 모르거나 초급자도 읽을 수 있도록 한국어 번역판과 에스페란토 원문이 함께 담겨 있다. 초급자 뿐만 아니라 중급자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율리안 모데스트의 쉽고 유려한 훌륭한 문장과 함께 공들인 좋은 번역문이 실려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니어들의 도전 정신이 깃든 번역서 출간, 한-불가리아 수교 31주년 의미 더해

평균 나이 77세, 입문 2년 만에 번역서를 출간한 에스페란토회 회원들이 보여준 노익장은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많은 시니어들에게 모범이 될 뿐만 아니라 도전을 망설이는 젊은이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불어 넣는 멋진 사례다.

또한 이들의 불타는 의지와 노력으로 유명 불가리아 작가가 국제 공용어로 쓴 원작소설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올해로 31주년이 되는 한-불가리아 수교를 더욱 뜻깊게 하는 문화적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널리 읽힐 수 있도록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에스페란토 문화원에서 출간한 이 책은 권당(256쪽) 7,000원에 인터넷 에스페란토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에스페란토 문화원 이중기 원장(왼쪽)과 성우회 내 소모임인 ‘에스페란토회’ 회원들이 막 출간된 번역서를 들고 문화원 건물 앞에서 기념 촬영했다. 번역에는 김건성(Sanulo), 김현규(Alpino), 심명기(Blanko), 이동영(Vilaĝo), 이승남(Savanto), 전창성(Emisto), 홍성건(Simono) 회원이 참여했다(이름 뒤 괄호 안은 에스페란토 이름). /사진=에스페란토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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